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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영화의 길이가 180분으로 3시간의 스토리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포스팅으로 관람평을 쓰기에는 부족하여 1부에서 3부로 세 번에 걸쳐 작성되었습니다. 본 글은 관람평 3부입니다. 앞전의 1부와 2부의 관람평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모순적인 면모
멧 데이먼이 연기한 그로브스 대령은 오펜하이머를 끝거지 지켜주는 동료였지만 어쩌면 니콜스 중령을 홀대했던 그의 태도가 연쇄 작용을 일으켜 니콜스가 스트로스 편에 서서 오펜하이머를 공격하게끔 하는 촉매제가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한 오펜하이머의 안보 문제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됐던 슈발리에 교수는 오펜하이머를 이용하여 첩보 활동을 하려고 했었던 것은 사실이나, 오펜하이머가 가장 곤란한 때에는 한밤 중에도 찾아갈 수 있도록 그에게 정서적인 도움과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줬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죠 이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명확하게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모순적인 면모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모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각 인물들이 그 다음에는 어떤 행동을 할지, 떠 해당 행동의 진의가 무엇 일지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펀하이머의 재미란 수많은 인물들에게 저마다의 모순을 풍부하게 부여하여, 모든 인물들의 행동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런 연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죠. 그리고 이러한 연출 방식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주는 재미의 근원
영화에서 힐은 오펜하이머를 딱 두 차례만 만나게 되는데, 한번은한 번은 시카고 대학의 지하 실험장에서 오펜하이머의 대화를 기록하다가 그에게서 펜과 노트를 강제로 빼앗기게 되고, 또 한 번은 핵폭탄 투하 직전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 실라르드 청원서에 서명을 부탁하다가 다시 한번 펜과 종이가 내동댕이 쳐지는 굴욕적인 경험을 반복해서 하게 됩니다.
그래서 힐이 스트로스 청문회에 처음 등장했을 땐 스트로스와 마찬가지로 오펜하이머에게 앙심을 품고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조성됩니다. 하지만 그랬던 우리의 예상이 파격적으로 뒤집힐 때 우리는 영화에서 서스팬스에 기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오펜하이머가 주는 재미의 근원에는 모순이라는 테마가 가장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순은 오펜하이머 라는 한 천재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보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행동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어 이야기를 풍부하고 흥미롭게 만들어내고 있으니까요. 영화의 초반에서 학문적 진실을 갈망하며 오펜하이머가 올려다봤던 그 맑고 순수한 하늘은 영화의 후반에서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들로 가득 찬 파멸적 광경으로 변해버립니다.
자신의 첫 학생들과 블랙홀 논문을 완성하며 세계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라며 말했던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핵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에 광분하는 청중들에게도 세계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며 광기에 찬 그들의 환호성을 더욱 더 무아지경의 상태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그런 상반된 면모를 두 개의 청문회에서 재조명하며 그 안에 깃들어있는 모순을 하나하나 끄집어냅니다. 물론 스트로스의 말처럼 두 개의 청문회는 당연히 재판이 아니지만 우리 관객들이 스크린 바깥에서 이 청문회 속의 논쟁들을 바라보는 순간부터는 청문회는 실질적으로 그리고 또 모순적으로 재판의 성격도 함께 갖게 됩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실질적인 재판을 바라보며 역사를 향한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목표였으므로, 오펜하이머는 여느 블록버스터처럼 스펙터클 하지도 간단명료한 선악구조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방식이 어떤 분들에게는 취향에 맞지 않아 지금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오펜하이머 최종 평점
개인적으로는 아이맥스를 이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가 있구나 싶어서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운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담는 것이 아이맥스 활용의 정석처럼 여겨져 왔던 것과는 달리 오펜하이머는 인물의 내면에 좀 더 내밀하게 다가가는 장면에 아이맥스를 활용하고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복잡하고 머리 아픈 것들을 멀리하게 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무려 3시간짜리 영화로 사람들을 다시 영화관에 모으고 집중하게 만드는 그것도 대중적인 상업 영화의 영역에서 그렇게 해내는 능력은 정말로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감독이 자신을 이해해 주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줄리어스 오펜하이머는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관람평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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